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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Again

 

  검은 조직을 소탕한지 이미 수 개월이 지난 지금, 계절은 어느덧 선선한 가을이 되어있었다. 에도가와 코난으로 지내왔던 시간동안 만들어왔던 인맥은 헛되지 않았는지, 비록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결국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검은 조직을 괴멸 시킬 수 있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던 사건이었다 보니 지금이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목숨을 걸고도 부족했던 싸움이었고, 신이치는 그래서 매 순간 미련 없이 행동해왔었다.

  미련 없이 행동했다고는 해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신이치는 그저 동료들에게 후회 없이 대했을 뿐이었다. 그 중에서 특히나 자신에게 있어서 꼭 필요했던 파트너, 하이바라 아이에게 파트너로서 매사 신중히 대했었다.

  오늘은 그런 하이바라 아이, 아니, 이제는 자신을 따라 해독제를 복용하여 미야노 시호로 돌아온 그녀와 파티장에 와있었다. 파티장이라고는 하나, 놀러 온 것이 아니었다. 검은 조직은 국제적으로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조직이었고, 비록 그 뿌리를 거뒀다고는 하나, 아직 잔당들이 남아있었다. 신이치는 그 잔당들을 추적하던 기관들 측에서 연락을 받고는, 우선 일본에서 활동 중이라던 잔당에 대한 잠입 수사를 하기 위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보고 받은 소식에 의하면, 조직을 재 구축 하려던 잔당들이 ‘기업 총수들의 교류회’라는 거짓 명분으로 교류회를 연다는 것이었다. 신이치는 잠입 수사 임무에 직접 자원했고, 그 소식을 들은 시호 또한 자신도 따라 가겠다며 나섰다. 참으로 예상 외의 일이었다. 신이치는 검은 조직이 완전히 괴멸 될 때까지 시호에게 불안감을 덜어주기 위해 그녀에게 숨김 없이 말하고자 했을 뿐이었고, 평소의 그녀 같았으면 이런 일에서 발을 뺐을 것. 그러나 그녀는 잔소리 없이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했고, 놀란 신이치가 그녀에게 의도를 물었을 때 돌아온 것 대답은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논리적이었다.

“난 그들은 당신보다 잘 알아. 전보다는 아니지만, 아직 그들의 특유의 분위기 정도는 파악 할 수 있어.”

“하지만 너…그 녀석들의 그 ‘분위기’ 자체가 불편할거 아니야?”

신이치의 배려에 시호는 조금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있잖아. 뭐가 두렵겠어? 두렵다면 조직을 이렇게 만든 당신을 더 두려워했겠지.”

 

 

 

  그리고 다시 현재, 파티장의 대기실이었다. 후루야씨가 힘들게 대신 입수해준 VIP 초대권으로 어렵지 않게 대기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찾은 거야. 카자미씨가 꽤나 고생하셨겠네’라는 생각과 함께 초대장을 한번 다시 훑어보았다. 별 내용은 없었지만 유독 눈에 띄었던 건 자신의 파트너로 명시 되어있었던 시호의 가명이었다. 이 파티에서 “파트너”로 명시 되었다는 것은 곧 애인이나 약혼자를 뜻하는 것. 비록 둘의 이름은 가명으로 적혀져 있었지만 신이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며 홧홧해진 얼굴을 괜히 만져댔다.

정작 그런 그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는지 시호는 드레스의 주름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아아. 별거 아니야. 미야노, 준비는 다 됐어?”

“뭐, 그럭저럭.”

“너의 언어로 그건 ‘준비가 됐다’라는 뜻이 되지? 그럼 이제 출발할까?”

“그러던지.”

  신이치는 에스코트를 하겠다며 팔을 내주었고, 시호는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살포시 감았다. 둘은 대기실을 벗어나 파티장으로 향했다.

  파티장으로 향하는 길은 멀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의 침묵은 그 짧았던 길 마저 더 길고 어색하게 느껴지게 했다.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신이치는, 묵묵히 팔짱을 끼고 발걸음을 옮기던 시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니, 성장 후 이 녀석을 제대로 마주보았던 적이 없네.’

  유아화가 된 상태로 만났었던 두 사람은, 가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임시 해독제를 복용을 한 적이 있었고, 그래서 서로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둘은 같이 성장한 채로 만난 적이 없었다. 조직의 괴멸 이후까지는. 조직의 괴멸 이후 신이치는 원래의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바빴었고, 그런 시호 또한 아무일 없는 듯 살아갔다. 하이바라 아이가 미야노 시호로 돌아와도 신이치는 그걸 자신처럼 “돌아온 것”이었지, “변화했다”라고 생각하지를 않았었다. 그래서 미야노 시호 또한 원래부터 알고 지낸 하이바라 아이처럼 대했었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본 미야노 시호는 하이바라 아이가 아니었다. 에도가와 코난과 하이바라 아이는 체격 차이가 크게 나이 않았었고, 둘의 눈높이는 언제나 일정했다. 하지만 시호에게 고개를 막 돌린 신이치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시호보다 키가 크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이전 관계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녀가 더 이상 하이바라 아이가 아닌 미야노 시호로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도 속눈썹이 이렇게 길었었나? 위에서 봐서 그런가?’

  시시하고 어쩌면 사소한 생각을 하고 있던 중, 시호가 정면만을 응시한 채로 나지막하게 쏘아붙였다.

“그래서 뭔데? 얼굴이 닳겠어. 뭘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아아. 그저…아니야, 별거 아니야.”

  당황스러움과 얼버무림이 섞여있던 그의 애매한 대답을 들은 시호는 마음에 안 들었는지 붙잡고 있던 신이치의 팔에 조금 힘을 주면서 말했다.

“정신 차려. 곧 입장 시간이야.”

  그리고 보니 언제 도착했는지 이미 파티장 문 앞이었다. 아직 명단에서 불려지지를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둘은 문 앞에서 그대로 애인 행세를 하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호는 정신 차리라고 했지만,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미야노 시호 고유의 얼굴을 신이치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긋이 쳐다보는 모습, 징그러우니까 그만둬줄래?”

지겹다는 듯 목소리를 깔며 말하는 시호를 향해 신이치는 머쓱하게 웃었다.

“아…정말 별거 아니야. 그저, 너를 제대로 본건 이번이 처음이구나……싶어서.”

“하아?”

“아무래도 이상하지? 하하,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거야 당연히 이상하지. 당신은 박사님 옆집인 쿠도 가 저택으로 돌아왔고, 그 후에도 박사님에게 편리한 기기를 만들어달라며 그렇게 지겹도록 찾아왔잖아. 계속 보지는 않았어도 나는 나름 지겹도록 봤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을.”

“하하, 그랬지.”

“그 웃음, 기분 나쁘니까 알려줄래? 웃음 포인트를 전혀 모르겠어.”

  정말이지,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다 옳은 말뿐이었다. 애초에 말로 이길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의 가시 박힌 듯 아닌 듯한 말투에 설명하기 힘든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마 그 죄책감은 그녀를 지금까지 혼자 방치해두고 제대로 직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려 나오는 것 같았다. 미야노 시호가 된 이후로 줄곧 혼자였을 그녀를 상상하니 마음 한 켠이 저릿해져 왔다.

“하이바라.”

  스스로도 왜 과거의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는데, 듣는 당사자는 오죽했을까? 오랜만에 듣는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서였을까. 지금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오던 시호는 잠시 눈꺼풀이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것조차 미세해서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일 같았다.

“하이바라 아이는 죽었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이미 알고 있잖아? 누구보다도, 당신이.”

  건조하게 쏘아붙이던 그녀의 말이, 그녀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건드렸던 걸까. 신이치는 괜히 울컥했다.

“너 말을 해도…! 죽긴 누가 죽어. 무슨 말을 해도 너는--!”

  신이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까지 일관성 있게 정면만을 무표정으로 응시해오던 하이바라가 처음으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것도 고통스럽지만 이미 체념했다는 표정으로..

“당신이 말하는 ‘하이바라 아이’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내가 당신을 따라 해독제를 복용하고 미야노 시호로 돌아오면서부터 그랬어. 나는 더 이상 초등학생도, 소년탐정단 소속도 아니야. 심지어 그 아이들 조차 내가 누군지를 모르지.”

  비록 차분하고 논리 정연하게 말하는 것으로 들렸지만, 빠른 속도로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신이치 조차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녀는 고통스러워한다는 것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모두가 행복해질 줄 알았다. 신이치 또한 시호가 그럴 줄 알고 그녀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이치의 오만이었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그녀에게서 더 돋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우습지 않니? ‘미야노 시호’ 라는 원래의 정체를 얻었는데, 원래의 나는 더 이상 없어. 애초에 ‘원래의 나’는 존재했던 것일까? 그게 ‘하이바라 아이’든, ‘미야노 시호’든, 원래의 나를 알던 사람들은 이제 모두 없어. 그리고 하이바라 아이는 죽었어. 난 더 이상...돌아갈 곳이 없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덤덤하게 슬픈 말을 내뱉는 시호를 보며 신이치는 아직 유지하고 있던 팔짱을 풀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려고 했다. 하지만 문 뒤로는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시호는 이미 잡고 있던 팔에 힘을 주고는 말했다.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야. 파티는 곧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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