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노 시호를 위하여
도망치자.
너는 처음 보는 얼굴로 나를 마주했다. 그 모습이, 너무, 울음을 참는 것만 같았다. 내가 급히 한 마디를 더 꺼내려고 할 때, 너는 웃으며 말했다.
시호, 미안해.
그렇게는 못해.
……이상한 꿈이었다.
조직은 이제 거의 끝에 달한 상태였다. 많은 정보를 모았고, 많은 자들을 죽였다. 조직의 궤멸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조직을 잡으면, 그 뒤에 있던 윗선들도 모조리 잡아 처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시호. 라고 말하는 네 모습이 참으로 기뻐보였다. 뭐랄까, 히어로가 되어 지구를 괴롭히는 악당을 잡기 바로 전의 모습 같았다. 하지만 나는 불안했다. 이렇게 조직이 쓰러질 리가 없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몇 번이라도 네게 말하고 싶었다. 조금 더 조심해야한다고. 분명 그들이 노리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너의 그 기분 좋은 표정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 차마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물론 너 또한 무언가가 더 있을 거라는 의심을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의심해도 도무지 나오는 게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나는 정말로 무언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네가 차마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 숨겨져 있다고 직감했다. 평생을 꽃밭에서 살아온 쿠도 신이치. 좋은 집과 좋은 부모님 사이에서,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보내며 나름 평범하게 살아온 쿠도 신이치는 절대로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예를 들면, 비리라던가.
“일은 잘 돼가요?”
“물론이지.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신이치군, 다 네 덕분이야. 네가 없었으면 우리는 이렇게 빨리 조직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을 거야. 전부 네 덕분이야.”
“하하, 뭘요. 이게 다 다른 분들이 열심히 해주셔서 그런 거죠.”
“…….”
쿠도 신이치는 똑똑하고, 영리하며, 머리가 좋다. 단 한 가지의 문제가 있다면 남의 호의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야 당연하지. 지금까지는 나쁜 마음을 갖고 너에게 다가서는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 설령 있다고 해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완벽하게 제 마음을 숨기는데다가 딱히 적의도 없지만 그렇다고 호의도 아닌 말을 들으면 너는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바보같이, 착해 빠져서는.
“어머, 너무 모든 일을 쿠도군에게 떠넘기는 거 아냐?”
“그야 당연히―.”
“글쎄. 이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모든 일을 쿠도군이 뒤집어쓰게 될 것 같은 걸. 공안이나 FBI, CIA같은 기관들은 전부 등을 돌려버리고 쿠도군이 희생양이 되는 미래가 보이는 것 같기도?”
“……무서운 말씀을 하시네요.”
“못할 것도 없잖아? 공안이나 FBI 같은 커다란 기관보다는, 사람 한 명이 다 뒤집어쓰는 게 모두에게 이익일 거 아냐. 그 사람 한 명을 제외하고는.”
“시호! 그만해.”
“미야노 양이 뭘 걱정하는지는 저도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장담할 수 있나?”
“물론이죠.”
“…나는 예전부터 어른의 말 같은 건 믿지도 않았어.”
“어어, 잠시만, 시호!”
네가 놀라며 날 쳐다봤지만 나는 이미 발걸음을 옮긴지 오래였다. 얼핏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너는 날 따라오지. 그 모습에 기분이 살짝 좋아졌지만, 결국 제자리였다. 너는 어쩜 그리도 순진한지. 왜 조금도 네가 마주하는 그 호의를 의심하지 않는 건지. 그러다가 정말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러는 건지!
“시호, 대체 왜 그래? 너 원래 이런 애 아니잖아.”
“―너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왔다. 너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퍽 놀란 모습이었다.
“…미안해.”
“아니야. 근데… 왜 그러는 거야, 시호? 혹시 조직 때문에? 그거라면 정말 괜찮아. 아무도 널 다치게 하지 못해. 널 지키는 사람들이 몇 명이야. 그, 그리고, ……나, 나도 있잖아. 그 누구도 널 건드릴 수 없다니까.”
“그거 때문이 아니야, 쿠도군!”
“그러면?”
“너 때문이야. 네가 너무 순진해서 그런 거라고! 넌 너무 순진해 빠졌어. 만약 정말, 정말로 조직 궤멸 중에 일이 벌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그 사람들이 널 보호해주고, 자신들이 대신 모든 걸 뒤집어 쓸 것 같아? 아니! 절대 아니야. 그들은 금세 꽁무니를 뺄 거야. FBI와 CIA는 일본에서의 모든 행적을 지울 거고, 일본 공안은 너를 희생양으로 내보낸 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자신들은 아무런 연관도 없었던 척을 하겠지. 게다가 직접적으로 움직인 후루야 레이는 ‘제로’ 소속이야. 애초에 일반인들은 있는지도 모르는 조직이라고. 그럼 사람들은 누구에게 주목하겠어? 너야! 너란 말이야.”
“시호,”
“잔말 말고 내 말 들어! 너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상당히 심각해질 수도 있어. 게다가 넌 경찰의 구세주, 21세기 홈즈로 이미 이름을 알린 몸이야. 널 알던 사람들은 흥분할 거고, 널 모르던 사람들도 널 알게 되겠지! 너는 언론의 희생양으로 평생을 살게 될 거야. 네가 이룬 모든 업적들은 잊혀지고, 조직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상태로!”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있어, 쿠도군. 넌 너무 순진해. 넌… 어려. 아직 사회를 맞이하기에 넌 너무 어리단 말이야.”
“너도 어리잖아.”
“내가 너랑 같니? 넌 좋은 집안에서, 나름 평범하게 살았지만, 나는 아니야. 어릴 때부터 너무나도 많은 상황을 봤다고. 그런데 너랑 내가 같다고 생각해? 제발, 쿠도군, 조금 더 현실을 봐. 사람들을 믿지 마. 아무도 믿어선 안 돼. 이 세상에서 너 같은 순수한 사람은 희생양이 되어버릴 뿐이라고.”
“시호, 넌 너무… 세상답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서 그래. 현실은 네 생각만큼 그렇게 더러운 곳은 아니야.”
“쿠도 신이치!”
가슴이 답답했다. 너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볼 생각이지? 그렇게 많은 더러운 사람들과, 추악한 살인마들을 봤으면서도 아직까지 저런 깨끗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긴, 너는 베르무트를 구하며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데에 이유 따윈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했지. 현실은 이유가 없으면 남 따윈 돕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너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어리고, 순진하다. 깨끗한 물의 상태. 아무리 검은 물감을 섞어도 그 깨끗함을 잃지 않는 물. 단순히 컵에 든 물이 아니라, 바다의 물이다. 바다에 검은 물감을 섞어도 그 바다는 절대로 제 푸름을 잃지 않으니, 어찌 이리도 너와 닮았을까.
“시호?”
나는 바다를 담은 것만 같은 너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너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리도 예쁜, 나의 천사, 나의 구세주. 네가 없었다면 난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겠지. 아름다우며 순수하고, 깨끗하면서도 청량한, 나의 신……. 너를 지키는 것이 정녕 나의 의무인 것일까.
“…아니야, 미안해. 내가 너무 흥분했네. 그래, 그곳이랑 이곳은 다르지. 네 말이 맞아.”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무 깨끗하니까. 그러니 이미 더러워진 내가 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겠지. 너의 순수함을, 너의 순진함을, 그리고 너를.
“하지만 쿠도군, 아까도 말했지만 너무 사람을 믿지 마. 나쁜 사람들은 많아. 알잖아. 이곳이라도 나쁜 사람이 없다는 법은 없어.”
“걱정 하지 마. 나도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아.”
“난 진심이야, 쿠도군, 만약에…,”
“만약에?”
“…아냐, 아무것도. 가자, 너 회의 있다며?”
“어? 으아악! 자, 잠시만, 시호, 오늘 너 먼저 갈 수 있지?”
“응, 그건 그런데. 왜? 늦었니?”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뛰어가는 네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귀엽기도 하지.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갔다 오겠다며 손을 흔드는 네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너를 어떻게든 지키고 말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만약 내가 너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일은 터졌다. 터지고 말았다. 결국 우려한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그 상황을 마주한 우리 둘의 모습은 각자 달랐다. 나는 가능성을 두었던 상황이 찾아옴에 절망했고, 너는 좌절했다. 너의 좌절감은 나보다 더 클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그래. 순진한 아이니까.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네가 어떻게 알았겠어. 공안이, FBI가, CIA가, 그리고 그 많은 기관들이 전부 조직에 손을 뗄 줄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쿠도군, 진정해.”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진정을 해!”
“신이치, 제발.”
내가 네 손을 잡고 나서야 너는 겨우 숨을 가다듬었다. 물론 나라고 이런 너의 상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너는 안정이 필요했다. 나까지 없으면 너는 정말 죽어버릴 것만 같은 몰골이었으니까.
“모두가 조직에서 손을 뗐어.”
“그래, 알고 있어.”
“시호, 넌 어떻게 그렇게 태연해?”
“예상했으니까. 말했잖아. 세상은 더러운 족속들의 그라운드라고.”
모든 기관들이 조직에서 손을 뗐다. 이유는, 그 망할 윗선들 때문이었다. 조직에 뒷돈을 대주던 사람들 중에는 미국, 영국, 일본 등등 온 나라들의 윗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돈을 대주면서 여러 가지 일을 부탁한 것이다. 약이라던가, 사람 처리라던가. 그렇게 편리하게 쓰던 조직이 무너지니 당연히 손을 썼을 것이다. 게다가 조직을 잡으면 뒤에 있던 자신들의 정체도 드러날 테니, 더욱 똥줄이 탔겠지.
그 대단한 윗선들은 정부에 압력을 넣었고, 정부는 각각 기관들에게 압력을 넣었다. 당장 그 짓을 멈추라면서. 그 결과 모든 미국, 영국 등 나라들의 기관들은 모두 철수했다. 조직에서 심어놓았던 잠입원들은 자결하거나 조직을 나왔다. CIA의 혼도 히데미는 동생 혼도 에이스케와 CIA로 복귀했고, 조디 스털링과 아카이 슈이치를 비롯한 FBI의 사람들 또한 미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직도 아카이 슈이치의 그 얼굴이 믿기지 않았다. 저 사람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공안도 마찬가지였다. 조직 일을 맡아하던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일을 맡았다. 카자미였던가. 그 사람도 상당히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로의 후루야 레이는, 분노했다. 소리치고, 화를 냈고, 마지막엔 ‘스카치’ 라는 누군가의 코드 네임을 외치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결국은 체념했다. 권력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지 아주 잘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쿠도 신이치는, 한 순간에 모든 방어막들을 잃었다. 이제 우리는 얼마 안 가 조직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쿠도군, 네가 어떤 심정일지는 잘 알겠어. 하지만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쿠도군,”
“…너 어떡해?”
“……뭐?”
“너 죽으면 어떡해? 이제 아무도 널 못 지켜주는데, 어떡해, 나는 너 못 잃어. 너까지 잃으면 나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근데 어떡하지? 이제 널 지켜줄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데. 나, 나 잡혀가면, 그럼 넌 어떡하지?”
“쿠도군?”
“나는 괜찮아. 근데 너 죽는 건 못 보겠어. 나는 죽어도 돼, 근데 너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제일 위험한 건 바로 너야, 너라고! 나는 그동안 잘 숨어 지냈지만 너는 아니야. 지금 제일 노출되어 있는 게 너인데, 대체 누굴 걱정하는 거야!”
“시호, 네가 죽으면 어떡하지?”
“신이치!”
“시호, 이제라도 증인 보호 프로그램 받자, 응? 물론 처음에는 거절할 거야, 조직과 관련된 사람인 걸. 하지만 우리 그래도 지금까지 함께 뭘 해온 정이 있는데, 어떻게 되지 않을까?”
미칠 것 같았다. 대체 지금 누굴 걱정하는 거지? 왜 내가 할 소리를 네가 하고 있는 거야? 가장 조직이 노리는 사람도 너고, 가장 노출되어 있는 사람도 너인데 너는 잘도 그런 말을 하고 있다. 너는 나보다 잃을 사람도 많지만, 나는 너 뿐이다. 근데 네가 그런 말을 해?
“쿠도군, 넌 나 못 잃는다고 했지.”
“응. 나는 너, 죽는 거 절대 못 봐.”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너 죽는 거 못 봐. 너는 지키고 죽을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네가 나를 보고, 내가 너를 봤다. 공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 신이치. 너는 이러면 안 돼. 내 인생에는 너밖에 없지만 네 인생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 그런데 왜. 어째서?
“너 죽으면, 네 부모님은? 란은? 네 친구들은? 나는 괜찮아. 내 인생은 이 정도였고, 내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근데 너는 아니잖아. 너는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이 있잖아. 나는 겨우 너 한 명이겠지만 너는,”
“왜 그런 말을 해?”
네 눈이 너무 슬퍼보여서 순간 말을 멈췄다. 왜 그런 눈을 해? 지금 울고 싶은 건 난데, 왜 네가 울 것 같은 눈을 해?
“그렇다고 왜 네가 죽어?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너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
“너는 다른 사람들이 있잖아. 네 곁에 있어줄 사람들이 있잖아.”
“네가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어.”
“대체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날 좋아하기라도 하니? 날 사랑해?”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갑작스러웠고, 나도 당황스러웠다. 아아,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감정이 너무 북받쳐 오른 나머지 결국 이런 말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궁금했다. 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너를 지키고 싶어 하고, 네가 죽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 내가 죽더라도 너는 지키고 싶다. 너를 사랑하니까. 너는 내 인생의 전부고, 나의 신이고, 나의 천사니까. 근데 넌 뭐지? 난 네게 뭐야? 그냥 단순한 파트너, 그 뿐 아니었어? 왜 네가 나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거야? 대체 왜?
그래서 물은 것이었다. 이대로 가면 네가 날 사랑한다고 착각해 버릴 것 같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날 사랑하지 않는 것만큼 슬픈 건 없는데, 만약 그 사람이 날 사랑한다고 착각을 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었다면 그때 내가 느낄 감정은 이루 말할 것 없이 슬플 것 같았다. 그래서 물었다. 후에 미치도록 슬퍼할 일을 없애고 싶어서.
“응, 좋아해. 사랑해. 그러니까 널 지키고 싶어. 내가 죽더라도 너는 살리고 싶어.”
그리고 내가 들은 말은 상상 외의 말이었다. 기관들이 모두 손을 떼는 상황은 예상했지만 이 상황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다시 물었다.
“뭐라고?”
“너를 내가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시호, 나는, ―시호!”
그리고 나도 모르게 도망쳤다.
“그러니까, 너도 그동안 날 좋아했는데, 너는 그게 너 혼자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도 같은 마음이었고, 그래서, 너무 좋아져 도망… 아야!”
“조용히 해, 쿠도군.”
“에이, 왜 그래? 결국 내용은 그거… 잠깐, 어이, 총은 내려 놔.”
우리는 잠시,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웃었다. 어이가 없기도 했고, 그냥 좋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하겠어.”
“도망치자.”
“시호,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조직은 끝도 없이 쫓아올 거라며 두려워했던 건 너잖아.”
“나한테는 네가 있잖아. 그리고 너에게는 내가 있고. 네가 날 지켜줄 거고, 내가 널 지켜줄 거니까 괜찮아.”
“…진심이야?”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거 보면 모르겠니? 조직도 한계가 있어. 지금까지 배신자 셰리를 못 찾았잖아.”
“그건 네가 초등학생 모습이어서―,”
“조직은 내 초등학생 모습도 알고 있었는걸?”
내가 너를 보며 웃자, 너도 날 따라 웃었다. 잠시 웃음소리가 방 안을 맴돌다가, 웃음이 멈추고,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정말 괜찮겠어?”
“안될 게 뭐야. 네가 날 지켜줄 거니까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 그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의연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그럼 나는 누가 지켜줘?”
“내가 지켜주지. 너보다 내가 사격 잘 할 걸.”
“고작 그거야?”
“그걸 제외해도 내가 너보다는 나을 걸? 이것 봐, 약해빠져서는.”
“아니, 잠깐, 이건 그냥 살이 빠진 거고,”
“어쨌든.”
“뭐가 어쨌든, 이야….”
괜히 투덜거리는 게 귀여워 머리를 헤집었더니 금세 눈썹을 찌푸렸다. 귀엽네. 이러니까 나보다 어린 게 실감이 나기도 하고. 괜히 장난이나 쳐볼까 싶어 놀리는 투로 입을 열었다.
“누나라고 불러볼래?”
“제정신이야?”
“어머, 왜 그러니? 내가 너보다 나이 많아.”
“아, 정말! 평소에는 안 그랬잖아.”
“그러니까 이번에 해보는 거잖아.”
“……한번만이야.”
어머, 정말? 괜스레 기대가 되어 조금 흥미가 담긴 눈으로 널 쳐다보니 잔뜩 얼굴이 붉어진 채로 네가 목소리를 냈다.
“…시호 누나.”
“어머나.”
생각보다 귀엽네? 라고 말하니 이젠 귀까지 붉어져서는 소리를 질러댔다. 다시는 안 할 거라느니, 악취미라느니. 정말, 귀엽지만 시끄럽네. 평소 같으면 안 했겠지만 오늘은 기분이 들떠서인지 안할 법한 행동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나는 네가 얼굴을 파묻은 베개를 네 손에서 빼내고, 네 뒷목을 잡아, 네 입술에 입 맞췄다.
너는 어떤 반응일까. 더 소리를 지르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얼굴이 더 붉어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너를 보는데, 음, 뭐랄까, 신세계를 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기, 시호.”
“왜?”
“하, 한번만 더 해볼까?”
툭.
뭔가가 뜯어지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도망 계획을 세웠다. 일단 신이치의 부모님이 계신 미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어찌어찌 잘 살자는 내용이었다. 정말 누가 보면 이게 뭔 계획이냐고 하겠지만, 우리는 나름 즐거웠다. 여기서는 이걸 하고, 저걸 하자. 밖에 나갈 때는 변장을 하고, 집 안에서는 서로를 보며 웃자. 완벽한 계획은 아니었으나, 꿈같았고 행복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신이치, 급해. 우리, 빨리 가야 해.”
“응, 알고 있어.”
“왜 이렇게 여유로워? 비행기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대로 가면 빠듯해.”
“괜찮아, 괜찮을 거야.”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잠시 한심한 눈으로 널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뭐 까먹은 건 없겠지.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가 들려 밖을 보니 그새 우리가 부른 택시가 온 모양이었다. 신이치, 나 먼저 택시에 가 있을 게. 하고 택시에 짐을 실은 뒤 올라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보며 너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뒤를 바라보니,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차가 보였다. 포르쉐 356A. 진의 차가!
“무슨,”
“출발하겠습니다.”
“네? 잠시만요! 아직 한명이 안 왔어요, 아직―,”
“네? 그치만 저 차가 보이면 바로 출발하라고 하셨는데요.”
나는 그제서야 상황의 퍼즐이 맞춰가지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더 여유를 부리던 너. 평소보다 더 사랑하다는 말을 해달라고 하던 어제의 너. 오늘 아침을 먹으면서도 계속 끊임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말해달라고 하던 너. 왜인지 표정이 그리 좋지 않던 너…….
나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네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탄 이 택시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네가, 쿠도 신이치가, 나를 보면서, 미야노 시호를 보면서….
“신이치―.”
하지만 너는 끝내 내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네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다정하게 답해주던 너는, 이제 없다.
그리고 분명, 네가 원하던, 살아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쿠도 가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일본의 공항에서는 소동이 일어났다. 창고에서는 총성이 울렸다.
갈색머리의 일본인 여자가, 공항 화장실에서 총으로 자살했다고 했다.
검은머리의 일본인 남자가, 창고에서 총살당한 채 발견되었다.
한 명은 이름 모를 사람이었고,
한 명은 일본에서 꽤 유명한 탐정이었다.
두 사건은 전혀 공통점이 없었으나 단 한 가지의 특이점이 있었다.
바로 둘 다 서로의 사진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 사건을 보도했고, 일본 전역이 이 두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연인 사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떠돌았다. 여자가 남자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이미 죽은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