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묘한 꿈을 꾸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꿈이었다.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그런 꿈이었다. 아주 잠깐뿐이라도 나를 사랑하는 너를 멍하니 바라보던 나의 모습은 비참했다. 그저 환상일 뿐인 꿈 속임을 알고 있음에도 너를 미워할 수 없는 내가 너무도 싫었다. 그렇게라도 해서 본 너의 모습조차 좋았던 나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결국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점이 너무나도 아득하게만 느껴져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린다. 그렇게 얼굴을 가린 손 밖으로 새어나간 슬픔과 손 틈새로 흘러내린 눈물은 아직까지 비참하게 남아 있는 너에 대한 나의 마음의 증거이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꿈의 잔상을 간신히 털어내고 비틀 비틀 거리는 걸음으로 의자에 앉는다. 아직 동이 트기에는 이른 시각. 이미 달아나버린 잠은 다시 올 생각이 없어 따뜻한 커피를 탄다. 머그컵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좋다가도 싫었다. 진하게 탄 커피 때문일까, 아니면 여전히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꿈의 잔상 때문일까.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다.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조차도 나를 모르게 되어버리는 이 순간들이 우습기만 하다.
기분 전환 겸 밖으로 나오니 이제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아 있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을이었던 것 같은데. 가을이 왔다 간 흔적조차도 없이 겨울은 나에게로 성큼 다가와버렸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손이 시려온다. 그 손끝에 아린 찬 공기는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쿠도 군, 그거 알아?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차가움은 차가움으로 상쇄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왜 하필 그래야 하냐고? 글쎄. 이유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차가움이 상쇄되지 않으면 무언가는 조각으로 남아버리게 된다는 거지. 그 조각은 아마도 차가운 편린으로 남아버리고 만 조각이겠지. 나의 그 조각들은 이미 유리병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니 어쩌면 좋을까.’
어쩌다가 널 좋아하게 되어버렸더라. 분명 너를 알게 된 시간이 그리 긴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생각을 해보니 모든 게 너무 먼 과거처럼만 느껴져. "하이바라." 하고 부르던 그 특유의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낮고 깊은 목소리, 정의를 위해서라면 몸 사리지 않고 달려들던 불도저 같은 성격. 하나, 둘, 되짚어보니 이미 내 모든 것들은 너로 인해 물들어버렸다는 게 보인다. 이미 내 감정은 돌이켜 버릴 수 없게 되어버렸고, 너는 그렇게 나의 마음에 조금씩 스며들었나 보다.
있잖아. 나는, 네가 화사하게 웃는 그 모습을 더 이상 못 보게 되어버리는 건 싫어. 너는 네가 그렇게 웃는 모습이 나에겐 얼마나 비참한지 모르겠지. 너는 왜 그리도 화사한 걸까. 네가 그렇게 웃을 때마다 나는, 겉으로는 웃지만 안으로는 울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고. 이럴 줄 알았으면, 너를 좋아하는 건 하지 말 걸. 물론, 하고 싶지 않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내 모든 시선의 끝이, 내 모든 감정의 이유가, 다 너였다고 한다면. 너는 믿을까. 이 모든 걸, 너는 듣지 못하는 이곳에서야 겨우 고백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리광 부리듯이. 이러한 내 선택들이 어떠한 결말을 가져오든, 난 아무래도 괜찮을 것만 같아. 이미 이 모든 것들이 다 너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명백하고, 확실하게 다 말하고 있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부정하겠어.
아아. 나는 너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