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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도..아니 에도가와 군. 나야. 언제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연락 한 통 없이 휙 사라져 버린 거야? 정말, 당신답다면 당신다운데. 박사님이 걱정하시니까, 안부 답장 하나라도 보내. 그 사람도, 걱정하고 있으니까.

 

- XXXX, 12월 6일, 하이바라 아이 -

 

 

그때의 너를 붙잡았다면. 그때의 불안감에 조금 더 확신을 가졌다면. 너를 향한 이 편지들이, 숨겨놓은 감정들이. 수취인을 잃어버려 방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미 늦어버린 후회를 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을 알지만. 나는 오늘도, 쌓여만 가는 편지들을 바라보며 너를 기다린다.

 

 

 

 

 

 

· · · · · ·

 

 

 

 

 

 

 

“에도가와군, 당신 말이야.”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예리함이 담긴, 날카로운 시선이 소년의 얼굴에 꽂힌다. 옅은 청록색의 눈동자와 청색의 눈동자가 서로를 담아낸다. 소녀의 질문과 눈빛에 살며시 움츠러들던 소년은, 이내 퉁명스럽게 질문에 답을 내던졌다.

 

 

“내가 너한테 뭘 숨긴다 그래.”

“요새 자꾸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행동 하길래. 뭔가 있는 줄 알았지.”

“도둑고양이라니, 너 말이야····.”

 

그리고 내가 언제 살금살금 거렸다고.. 마주하던 시선을 먼저 피하며 앞서 걸어가던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런 소년의 모습에. 소녀 또한, 더 이상의 질문을 하지 않고 푸른색의 시선을 따라 아이들을 바라봤다.

 

 

“오늘은 뭐 하고 놀까요?”

“박사님 댁에 가는 건 어때?”

“가서 가면 야이바도 보고! 간식도 먹고 그러자!”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대화를 하면서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꺄륵 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년은 아이들에게 향했던 시선을, 조심히 소녀에게로 돌리곤 그 모습을 눈에 새겨 넣는다.

 

 

“즐거워 보이네.”

“그러게, 대화는 정말 평범하게 그지없는 것들인데.”

“아니, 저 아이들 말고.”

“···?”

 

 

뭐? 알 수 없는 말이 소녀의 귓가에 스며든다. 발걸음을 멈춰 말의 주인을 바라보면, 부드럽게 휘어진 청안과 마주한다. 소녀는 밀려오는 어떠한 위화감에, 그를 붙잡으려 입을 달싹이려는 순간. 앞서 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로막아선다.

 

 

“코난군! 코난군도 같이 -··. 어라? 아이쨩, 코난군은?”

“..아까 먼저 돌아간다고 하면서 갔어.”

“네? 말도 없이 가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요?”

“근데. 코난 말이야, 요새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았어?”

“에? 그랬던가요?”

 

 

으음- 작은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는 아이들 너머로 소년이 사라져 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자신보다 뒤늦게 멈춰진 발걸음. 자신보다 먼저 떼어진 입. 공중으로 흩어지는 소년의.

 

 

그렇게 웃어, 하이바라.

 

나중에, 또 보자.

 

 

‘···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소녀는, 자신을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소년의 뒷모습이 보이는 일렁임으로부터. 겨우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그 모습이, 말들이 기약없는 다음을 위한 인사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

 

 

 

 

· · · · · ·

 

 

 

 

에도가와 군. 오늘은 네가 꿈에 나왔어. 안부 인사를 전하러 왔다면서. 사람들 속도 모르고 웃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나, 꿈속에 올 시간에 돌아오라고 소리쳤더니 시간 핑계로 도망가더라? 당신, 돌아오면 용서 안 할 거니까.

 

 

- XXXX, 12월 15일. 하이바라 아이 -

 

 

 

 

피곤함이 채 가시지 않은 눈을 꿈뻑이며 종이 위로 글자를 새겨 넣는다. 간밤에 나타난 소년은. 소녀가 알고 있던 모습 그대로였다. 얄밉고, 제멋대로에, 끝까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는. 자신이 늘 바라보았던 모습 그대로. 마지막 한 획을 긋고 펜을 내려놓으면.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려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년이 사라지고, 소녀에겐 주인을 기다리는 편지들을 써내려가는 일이, 일상 위로 내려앉았다.

 

거실로 나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소년이 본디 있었어야 했던 장소를 바라본다. 소년이 사라진 날. 저 집에 묵고 있던 그 남자도 같이 사라졌더랬다. 아마, 탐정 사무소 밑 카페의 알바생인, 그 남자 또한 같을 것이리라.

 

 

“아이군, 밥 먹자꾸나.”

“네-.”

 

 

돌렸던 시선으로, 다시 한 번 건너의 집을 바라본다.

 

 

나중에 또 보자.

 

 

그래서, 그 나중에 가 도대체 언젠데. 바보. 소녀는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애써 돌린 채,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아침 일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 · · · · ·

 

 

 

 

“아이군, 오늘도 가려는 게냐?”

“··· 금방 다녀올게요.”

“지금쯤, 우편함엔 편지가 한가득 쌓여있겠구나.”

“그러게요, 수취인이 매번 부재중이어서야, 펼쳐지지도 못한 채 버려지겠어요.”

 

 

펼쳐진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을 테지만.

 

 

다녀올게요, 박사님. 벗었던 외투를 챙겨 입으며 무거운 현관문을 당긴다. 소녀의 작은 손엔 오늘 자의 편지가 들려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일 텐데, 한 걸음씩 떨어지는 발걸음이 무겁다.

 

 

하교 후 아이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탐정 사무소를 찾아갔다. 학교에서 보이는 소년의 부재에도 혹시나, 자신들이 모르는 친구의 대한 소식이 그 사이에 생겼을까 봐. 그런 작은 희망을 품은 채, 소년과 걸었었던 거리를 걷는다. 소녀도,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였다. 마찬가지로 작은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늘 소년을 기다리는.

 

 

“란 언니, 오늘도 코난군..”

“코난군에 대한 새로운 소식은 없는 건가요!”

“란 누나..!”

 

 

이전의 날들과 다름없는 질문들이 쏟아진다. 기대 어린 눈빛들을 난감하게 바라보던 소년의 누나는(친누나는 아니지만). 작게 미소 지어주며, 미안해. 하고 사과를 해왔다. 당신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소녀는 오늘도 들을 수 없는. 친구의 소식에 한껏 풀이 죽어버린 아이들을 달래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란 누나. 코난군은··· 이제 볼 수 없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 모두가 이렇게 걱정하고 있으니까. 분명, 코난군은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새김질 하듯 말을 이으며 한참 동안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하며 여린 손이 여린 머리칼 위해 내려앉는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을 떼기 시작하고 아이의 누나도. 집으로 올라가기 위한 몸을 돌리고 있었다.

 

 

“저기.”

“응?”

“금방,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얄밉게 웃으면서 나타날 테니까, 분명 그럴 테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이 삼켜진다. 소녀의 입이 달싹이다 닫혀버리는 것을 바라보던 그녀는, 눈을 맞춰주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고마워 아이쨩. 응, 분명 그럴 거야.”

 

 

그렇게 웃어, 하이바라.

 

 

순간, 소년의 목소리가 찬바람 속에 따스하게 스며들어온다. 그 날이 부드럽게 미소 지어 보이던 아이가, 제 앞에, 그 사람 옆에서 웃고 있었다.

 

 

‘어떻게 웃고 있으라는 거야. 네가 없어 전혀 웃을 수가 없는데. 이 사람도. 그리고.···’

 

 

 

 

나도.

 

 

 

 

 

 

· · · · · ·

 

 

 

 

 

오후의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자니, 어느새 커다란 철문 앞에 다다른다. ‘쿠도’ 라고 적혀있는 문패를 바라보다 그 아래 박사님이 만들어주신, 간이 우편함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손에 쥐고 있던 하얀 편지 봉투를, 우편함 속으로 집어넣는다, 아니. 그러지 못한다. 어째서인지 바로 돌아서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편함을 열어보라는 무언가의 신호가 귓가를 울리고. 나는 그것에 귀를 기울였다.

 

 

“이게, 무슨 ···”

 

 

열린 틈 사이로 당연히 보여야 하는, 하얀색의 봉투들이 보이질 않는다. 펼쳐지지도 못한 편지들이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도둑? 아니. 누군가 가져간 건가? 도대체 누가? 왜? 당황함이 가득 서린 채, 텅 비어버린 우체통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참, 사람도 없는 집에, 무슨 편지를 그리도 보내놓은 거야?”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안에 있던 편지들 내가 가져왔는데. 괜찮지?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찾고 있던 목소리가.

 

 

“하이바라.”

 

 

네게 닿지 못해 쌓여만 가던 편지들이 이번엔 제대로 닿아있었다. 너와의 거리가, 너로 인해 점점 좁혀진다. 열 걸음. 더 좁혀진다. 다섯 걸음. 조금 더 좁혀진다. 그리고 한 걸음. 발치에 떨어진 편지를 주어든 너는, 슬쩍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이 편지도··· 내가, 가져도 되지?”

 

 

펼쳐질 줄 몰랐던 마음 하나, 닿을 줄 몰랐던 마음 둘. 그리고 마지막으로 떨어진 마음 셋. 모두, 네게, 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 · · · · ·

 

 

 

오늘도 모리 탐정 사무소에 아이들과 같이 갔었어. 당신이 사라진 후, 아이들은 매번 그곳을 찾아가. 당신의 소식을 들으러. 그리고 그 사람도. 사무소 앞에서 혹시 네가 돌아올까, 지나치지 않을까. 한참을 서 있다 들어가. 매번 아이들의 같은 질문에도 괜찮을 거라며 웃어줘. 자신에게 거는 주문을 외우듯이. 당신이 무엇을 위해 사라졌는지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냐. 무사히 돌아와만 줘. 그 사람을 위해ㅅ

 

 

막힘없이 흰 종이 위에 글자를 새기던 펜의 움직임이 멈춰 선다. 소녀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을 위해서라는 말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그저 명분 좋은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멈춰진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작은 점이, 주변을 잠식시키며 커져갔다. 새하얀 종이에 번져가는 검은 점 하나. 꼭, 너를 닮았네. 예고 없이 찾아와 제 주변을 물들여가는 소년을 떠올리며 소녀는 쓰던 편지를 마무리해간다.

 

 

 

오늘도 모리 탐정 사무소에 아이들과 같이 갔었어.·· -··· 당신이 무엇을 위해 사라졌는지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냐. 무사히 돌아와만 줘. 그 사람을 위해ㅅ

 

 

- XXXX, 12월 20일. 하이바라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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