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이 내게 손을 내밀 때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만약 내게 가장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가장 증오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자신은 가장 먼저 그 아이를 떠올릴 것이다. 그 아이의 탐정으로서의 자질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자신을 구한 그를, 자신의 언니를 죽게 내버려둔 그 능력을 자신은 사랑하고 또 증오한다 대답할 것이다. 너무나도 동질감이 들어 증오하고, 너무나도 어리석어 사랑한다 대답할 것이다. 미야노 시호는 새하얀 침대 위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조용히 몸을 일으킨 그녀는 작게 방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신이 존재할 때의 이야기였다.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금발을 가지고 있던 그 여자의 말마따나 적어도 우릴 향해 웃어줄 신 따윈 존재하지 않을 터였다. 신이치는 자신의 옆에서 늘어져 잠들어있었다. 또 늦은 시간까지 사건에 휘말려 해결하고 온 모양이었다.
“…일어나.”
존재한다면, 하는 전제 자체가 우습지 않은가. 존재했다면 실재하는가에 대한 의심은 일절 없을 터였다. 그것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자라면 더욱이 당연한 일일 터였다. 시호는 작게 눈살을 찌푸렸다. 침대 위로 부드럽게 햇살이 닿아오고 있었다. 이른 아침만 되면 눈이 부시다며 곧잘 커튼을 치고 자곤 했던 자신과 그였다. 시호는 고개를 돌려 커튼이 살랑이는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제는 창문을 닫는 것도 잊고 잠이 든 모양이었다.
“쿠도 군.”
그럼에도 그가 정한 섭리라는 것을 거스르려 했기 때문에.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을 어기고 말았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이 그를 증오한다 하더라도, 사랑한다 하더라도 신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 적어도 자신은, 그는 신의 은총 따위는 받을 일 따윈 없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어느 순간에도 믿음 한 번 준 적 없는 신을 향해 차라리 그렇게 무관심하길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시호는 묘하게 얼굴을 찌푸린 신이치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오늘도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몸에 맞지 않는 약을 몇 번이고 먹어온 영향이었다. 자신의 충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몸이 하는 경고를 무시해온 결과였다. 시호는 침대에서 내려와 나란히 정리해둔 파란색 슬리퍼를 신었다. 그간의 행적만을 보더라도 당연했다. 연달아 약을 먹는가 하면, 장기간 복용한 적도 있었다. 몇 번이고 무리하게 집어넣은 시제품은 조금씩 그의 몸에 축적되어 왔을 터였다. 시호는 익숙하게 계단을 밟아 내려가 부엌으로 향했다. 그를 위해 구비해둔 진통제가 찬장 안에 아직 남아있을 터였다. 그가 항상 사용하는 새하얀 머그컵 역시 부엌 찬장 안에 넣어둔 채였다.
미야노 시호는 찬장을 열어 머그컵과 몇 알 남지 않은 진통제를 꺼냈다. 물을 적당한 온도로 끓이고 머그컵에 채워 넣는 것도, 약과 함께 그에게 건네는 것도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다. 그와 함께 잠을 청했던 침대 맡에 앉아 그를 깨우는 것도, 막 깬 그에게 약을 먹이는 것도 그랬다. 시호는 조용히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상태가 안 좋은 이상 웬만한 소리로는 깨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몇 년을 알고 지내며 알 수밖에 없었던 그의 증상 중 하나였다. 시호는 문을 열어 침대 옆에 둔 작은 서랍장 위에 컵과 약을 올려놓았다.
“신이치…”
시호의 움직임에 침대 위가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에 신이치 역시 눈치챈 것 같았지만, 큰 반응을 보일만큼은 아닌 듯했다. 시호는 그의 등을 조심스레 쓸어내렸다.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꽤나 얌전한 짓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그는 곧 눈을 뜰 터였다. 시호는 조금씩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그의 등을 힘을 주어 눌렀다.
“…아파…”
“잘 잤어, 쿠도 군?”
“아, 미야노… 좋은 아침…….”
신이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신이 건넨 약과 컵을 손에 쥐고 멍하니 눈만 깜빡이는 그를 보며 시호는 그의 뺨에 손을 대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열이 있는 거 같네.”
“…어제 늦게까지 밖에 있어서 그런가 봐.”
“그러게 일찍 들어오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몇 년이었다. 그와 알고 지낸 몇 년이란 시간은 규칙성을 만들었고, 습관을 만들었다. 신이치는 진통제를 입에 넣고 물을 몇 모금 삼켰다. 해독제를 먹고,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이후로 지난 시간은 일상이 아니었던 것마저 일상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없어서는 허전한 묘한 일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시호는 신이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미안하면 오늘은 나한테 반납하지그래?”
“…해야 하는 게 있던가?”
짧다면 짧았던, 잊을 수 없을 같은 시절이었다. 그 짧은 시절은 타인과 맞물리는 일 없을 그와 자신만의 동질감을 만들었고, 결과로써 묘한 감화를 일으켰다. 사소한 일과도, 중요한 계획도 나눌 수밖에 없는 사이로 쌓여버렸다. 시호는 창문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신이치는 시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정원?”
“…에 심을 걸 사고 싶다고 했잖아.”
“아…”
삭막했고 또 삭막했던 시간은 이미 지났다. 그의 몸은 좀먹어간 부작용에 약해진 채였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몇 년을 이렇게 생활하면 그 증상도 점차 줄어들 터였다.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생활은 다시 일상이 될 터였다. 시호는 그의 손에서 빈 컵을 빼앗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신이치는 조용히 시호를 바라보았다.
“점심 먹기 전에 다녀올 건데, 어떻게 할래?”
이것이 그와 자신이 일군 풍경이었다. 그와 자신이 만든 작은 정원이었다. 풀 하나 자라지 않을 것만 같은 곳에 피워낸 붉은 동백이었다. 시호는 신이치를 바라보았다. 신이치는 천천히 침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상태가 좋지 않을 테지만, 무리를 시킬 생각은 없었다. 점심때가 지나서라도 상관없었다. 그가 먹은 약기운이 돌기 시작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이었다.
“…갈 거야.”
“괜찮겠어?”
“응. 전에 간다고 했었으니까. …차에서 조금 자지 뭐.”
급한 일이 아니었다. 그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신이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당장 가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의미인 듯했다. 시호는 그의 몸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그와 그런 약속을 나눈 것도 같았다. 어떤 약속이든 약속은 꼭 지켜달라는 서약을 했던 것만 같았다. 신이치는 어색하게도 시호의 몸을 안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 스킨십에는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면허를 딴 건 그와 함께 살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그 역시도 비슷한 시기에 운전면허를 얻었지만,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운전면허를 취득한 데는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준비를 마친 쿠도 신이치와 미야노 시호는 차 앞 좌석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앉은 것은 시호였다.
시동을 건 시호는 브레이크를 밟은 뒤 드라이브로 기어를 올렸다.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자동차는 주차해둔 장소를 천천히 벗어나고 있었다. 처음 시호가 운전하던 차에 탔을 때도 느낀 적 있는 묘한 고양감이 있었다.
자동차를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액셀에서 발을 뗀 후 아주 조금씩, 급하지 않게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마찬가지였다. 힘이 드는 건 당연했고, 내키는 대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보다도 지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을 시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었다. 처음 운전대를 잡았을 때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해오고 있었다. 신이치는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네가 운전하는 차에 타는 거 오랜만인 거 같아.”
“누가 운전하는 차에 타는 게 오랜만이겠지.”
“그런가… 하긴 최근에 차를 타고 다닐만한 일이 없었으니까…….”
시호는 신이치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멀리 나갈 일이 적어졌을 뿐이었다. 서로의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몸 상태가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변명 삼아. 일상과 멀어지는 것을 피해왔을 뿐이었다. 시호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것도 오늘로 끝이었다. 정원에 심을 것을 사, 마당 한 켠에 옮겨 심는 순간. 그 식물마저 일상인 것처럼 풍경에 녹아든 순간. 모든 핑계는, 변명은 일상을 벗어나지 않기 위한 구실은 되지 못할 터였다. 시호는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신호등을 몇 개, 교차로를 몇 개. 또 몇 개의 신호등을 지나 있는 작은 골목 안에 있는 건물이 그와 자신의 목적지였다. 시호는 조심스레 브레이크를 밟고 D에 있던 기어를 P로 옮겼다.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신이치는 차가 멈춘 사이에 잠에서 깬 듯했다.
“…깼어?”
“…응…”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푼 시호는 막 안전벨트를 풀고 있는 신이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피곤이 가시지 않은 듯 눈을 깜빡이며 유리창 밖을 멍하니 쳐다보는 중이었다.
“…갈까?”
“아, 그래…”
어쩌면 먹은 약이 아직까지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시호는 차문을 열어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신이치 역시 시호를 따라 밖으로 발을 내리고 있었다. 좋은 날씨였다. 부드럽게 닿아오는 바람도, 포근한 기온도. 그와의 외출을 반기고 있는 듯했다.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사랑스러운 날씨였다.
운이 좋았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들 수 있었던 것도, 그와의 외출을 결심한 날 우산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오늘만큼은 우리의 길을 축복한다는 의미인 것인지, 단순히 그와 자신의 선택이 좋았던 것인지. 운이라는 단어로 퇴색해도 되는 것인지, 그런 거창한 것과는 무연한 것인지. 아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였다. 시호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붉은 벽돌로 마감한 건물로 발을 옮겼다. 가게는 건물 2층에 있었다.
위치만큼이나 묘한 분위기를 가진 가게였다. 층 하나를 전부 식물을 장식하는데 사용한 가게는 건물 입구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향긋한 풀 내음과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온 식물. 벽 선반에 놓인 크기를 맞춘 화분과 바닥부터 계단, 가게 입구까지 규칙성 없이 놓인 크고 작은 화분. 시호와 신이치는 그것들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냄새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걸음은 무거워져만 가고 있었다. 무언가가 숨통을 죄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게 안을 가득 메운 식물 때문일 것이라, 신이치는 식물을 바라보고 있는 시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도착한 이후,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던 시호는 어느 순간 멈춰 서서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줄곧 찾고 있던 식물을 발견해 그대로 눈에 담고 있는 모양이었다.
“미야노, 살 건 정했어?”
“어, 이걸로 할 거야. 넌?”
“나?”
“정원… 넓잖아. 너도 하나쯤 심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시호가 선택한 것은 새빨간 동백이었다. 신이치는 정원 한 켠, 죽은 잔디를 정리했던 곳을 떠올리고 있었다. 큰 공간은 아니었다. 시호가 고른 나무와 자신이 고를 무언가를 심으면 그걸로 가득 찰만한 작은 공간이었다. 신이치는 시호가 고른 화분 옆, 작은 화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름 정도만 겨우 알고 있는 생소한 짙은 보라색 꽃이었다.
“…그럼 이걸로.”
“흐음.”
“동백은 자라면 나무가 될 테니까.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나무라 불릴 만큼 자라는 데에는 족히 몇십 년은 걸릴 터였다. 단순한 핑계일 뿐이었다. 그때까지도 함께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의 표현일 뿐이었다. 정원 한가운데. 신이치와 시호가 고른 꽃이 마당 한 부분의 풍경을 만드는 순간을, 그 꽃이 만개하는 풍경을. 자라는 동백 아래로 진 꽃을 정리하고, 새로 꽃을 골라 심는 그때를. 언제까지고 곁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조그마한 바람일 뿐이었다. 시호는 신이치가 고른 꽃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그 작은 소원을 눈치채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보라색 꽃에 담은 감정을 알아내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신이치는 어색하게 미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부족할 것 같으면 다시 사러 나오면 되고…”
“…그래.”
그와 자신의 사랑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그런 다정한 것이라.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시호는 차 트렁크와 뒷좌석을 차지하고 있는 화분을 바라보고는 자동차 문을 닫았다. 여전히 운전대를 잡은 자신과 자신의 옆에 앉은 그는 집을 나올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속삭이고 말았을 때. 그 사랑에 누구보다도 빨리 상대가 눈치채버리고 말았을 때. 할 말도 찾지 못한 채, 시선도 마주하지 못한 채. 영원과 같은 찰나에, 다디단 어색함에 자신의 숨소리마저 크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신이치는 작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부끄러움에 잠식되지 않도록 무의미한 것들로 머릿속을 채우고 싶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시호는 여전히 부드럽게 차를 몰뿐이었다.
짧은 외출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온 시호와 신이치는 차 안에 실었던 화분을 마당 한구석에 내렸다. 당장 옮겨 심을 필요는 없었다. 그가 준비한 점심을 먹고, 느긋한 시간을 보낸 후에도 충분했다. 시호는 부엌에 서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신이치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요리를 시작한 건 그때였다. 그와 자신이 서로 다투어 면허를 따던, 막 동거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이유는 물을 수 없었다. 서툰 칼질로 천천히 요리할 때에도, 요리책을 뒤적일 때에도, 요리를 자랑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때마저도. 자신은 그에게 그 무엇 하나 묻지 않았다. 그저 맛있다, 작게 미소하며 그에게 한마디를 건넸을 뿐이었다.
시호는 요리하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테이블 위를 닦았다. 그가 요리에 취미를 붙이면서 자연스레 테이블 세팅은 시호의 몫이 되었다. 자신이 고른 테이블 보 위로 색을 맞춘 식기를 올리고 그가 준비한 요리를 담으면 준비는 끝이었다. 그렇게 자리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그의 요리를 먹는 것이 전부였다. 맛도, 취향도 점점 닮아가는 서로를 비웃으며,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을 뿐인 시간이었다.
평소보다도 조용히 식사를 마친 둘은 빈 접시를 싱크대 안에 집어넣었다. 찻잔을 꺼내 소파로 간 시호는 테이블 위에 잔과 찻잎을 넣은 주전자를 올려놓고 있었다. 신이치는 끓인 물을 주전자 안에 넣고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렇게 차를 마시고 나서 할 일은 사둔 식물을 옮겨심는 것이었다. 우습게도 설거지는 뒷전이었다.
차를 마시는 순간에도 대화는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찻잔을 비웠고, 빈 찻잔은 차곡차곡 싱크대 안을 채워갔다. 그렇게 정적이 찾아온 집안을 뒤로, 정원으로 이어진 베란다 문을 통해 밖으로 발을 옮겼다.
두꺼운 장갑, 모종삽, 흙 조금과 그와 자신이 산 화분. 신이치는 옷 소매를 걷어 올리고는 삽을 들어 올렸다. 건조한 흙 속에 그의 삽이 꽂히며 버석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호는 그의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가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래서 잘 자라려나.”
“영양제는 있어.”
“그래?”
신이치는 조금 크게 파낸 자리 안으로 조심스레 화분에서 빼낸 식물을 넣었다. 그렇게 준비해둔 흙으로 덮고 물을 주는 것까지, 어려운 작업은 없었다. 시호는 자리에서 일어서 수도꼭지에 손을 얹고 있었다.
“돌릴게.”
“어.”
자신은 그의 목소리에 맞춰 물을 틀고, 그는 잘게 나오는 물줄기를 고루 나무에 뿌려주고 있었다. 물이 닿아갈수록 색이 짙어지는 흙을 보며, 물이 맺히는 나뭇잎을 보며 시호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부드럽게 닿아오는 흙냄새가 지워진다 하더라도. 정원 한 켠을 차지한 자신의 동백과 그의 캄파눌라가 언젠가 말라버린다 하더라도. 그와 자신의 일상을 흉내 낸 비일상은 오늘로 마침표를 찍게 될 터였다. 그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신이치는 끼고 있던 장갑을 벗고 있었다. 흙으로 그의 장갑과 옷은 더러워진 채였다. 시호는 조용히 신이치에게로 발을 옮겼다.
“옷, 갈아입어야겠네, 쿠도 군.”
“아, 그러게.”
가까워지면 질수록 그는 자신의 옷에 묻은 흙이 신경 쓰이는 듯했지만, 그런 생각을 할 틈을 줄 생각은 없었다. 흙이 묻을 것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의 머리카락을, 소매를 정리해주고 싶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충동적인 마음이었다. 어색하게 느낄 그를 위한 변명만이 존재하는 행위였다. 시호는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거창한 무언가를 달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고마움일, 또 어쩌면 미안함일 소심한 행동일 뿐이었다. 그에게 전해질지도 확실하지 않은 혼자만의 감정이었다. 신이치는 시호의 손길에 조용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미야노?”
“머리카락, 젖었어.”
“아…”
“설거지는 해둘 테니까 저녁 먹기 전에 씻는 건 어때.”
은은하게 풍겨오는 젖은 흙냄새와 동백꽃 향기. 건조한 풀 위를 밟고 있는 그와 자신의 신발. 그는 검은 셔츠 위에 카디건을 걸쳐 입고 있었다. 시호는 단정하게 접혀있던 그의 옷소매를 내리고 묻어있던 흙을 털어냈다. 이런 작은 스킨십에도 그는 사랑스러운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피하려 움직이고 있었다. 남은 그의 소매 오른쪽을 정리하기도 전이었다. 베란다 문을 연 신이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시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였다.
“…그, 그럴까.”
부드러움에, 부끄러움에 캄파눌라를 선택해버렸던, 우스운 말을 덧붙여버렸던 그때처럼. 실수로라도 입을 놀리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나 알 수 있는 단어로 사랑을 속삭이지 않기 위해. 그는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렇게도 은근한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시호는 작게 미소하고는 손을 털었다.
“들어가자마자 손 씻는 거 잊지 마.”
“…어린애도 아니고…”
“비슷하잖아?”
“…비슷하긴 뭐가 비슷해.”
신이치는 묘한 표정으로 시호를 바라보고는 안으로 발을 옮겼다. 마냥 싫어하는 이야기만은 아닌 주제에, 그는 꺼내고 싶지 않은 척을 하곤 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만날 일도 없었을 사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아닌 척을 하곤 하던 그였다. 시호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를 따라 집안으로 발을 들였다. 자신이 그를 증오하는 척을 해온 것처럼, 원망한 척을 해온 것처럼. 사랑이 아닐 것이라 착각을 해왔고, 그렇기에 사랑일 것이라 느꼈던 우습기만 했던 그때와 같이. 변한 것 하나 없이 자신을 속이고 거짓으로 위장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탐정인 주제에 솔직이라는 단어와 무연한 사람. 다정한 사랑을 해오고 있는 주제에 눈치도 채지 못한 둔감한 사람. 그런 사람인 걸 알았기 때문에, 그런 면조차 자신과 닮아있기 때문에 감화되어버린 것일까. 사랑해버린 것일까. 시호는 설거지를 마치고, 그가 세탁기 안에 넣은 검은 셔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구니 안에 들어있던 검은색 옷들 역시 세탁기 안에 함께 들어있었다. 돌아가기 시작한 세탁기는 그가 넣은 섬유유연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와 자신의 향기를 은은히도 풍기고 있었다. 시호는 욕실과 이어진 세탁실을 빠져나와 옷장이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닫혀있는 옷장 옆, 작은 선반 위에 그가 입고 있던 카디건이 놓여있었다.
어쩌면 자신에게 부끄러운 감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급히 몸을 움직였는지도 몰랐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감정을 감추기 위해. 그렇게 평소와 같은 척을 하기 위해 저녁 전에 씻는 것을 선택했는지도 몰랐다. 시호는 선반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들어있는 그의 시계와 안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안경을 쓸 정도로 눈이 나쁘지 않았고, 시계는 새로 맞춘 상태였다. 첫 번째 서랍에 들어있지만,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옛 물건인 셈이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앞에서 열어본 적은 없었지만, 이따금 서랍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만의 소중한 추억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밀스럽고 또 조심스럽기만 했던 행동이었다. 그런 그만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작은 호기심으로, 이제는 잊었을 정도로 사소한 일화였다. 시호는 조용히 서랍을 닫고 그의 카디건을 들어 올렸다. 씻고 나온 그에게 건넬 생각이었다.
자신이 산 그의 카디건과 그가 산 자신의 스웨터. 암묵적으로 서로에게 건넨 조그마한 신호였다. 시호는 자신이 입고 있던 스웨터를 바라보다 욕실이 있는 1층으로 발을 옮겼다. 신이치는 채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털고 있었다.
“자.”
“아, 고마워.”
자신의 작은 배려와 그의 작은 애정. 시호는 카디건을 걸치는 그를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했다.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소소한 일상이었다. 자라는 꽃들과도 무관하게 이어질 생활이었다. 신이치는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는 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심해와 같은 눈동자가 시호의 눈동자에 담기고 있었다. 그의 부드러운 샴푸 냄새도 옷에 담긴 섬유유연제의 향기도. 전부 시야에 담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시호는 그의 머리카락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말려줄까, 쿠도 신이치 군?”
“…됐어.”
“뭘 부끄러워하고 그래?”
“……제 마음입니다, 미야노 시호 씨.”
새삼스레 뛰는 심장에 신이치는 시호를 따라 작게 웃음을 내보였다. 사랑이었다. 당연하게도 사랑이라 느껴버린 감정이었다. 시호는 조심스레 자신을 껴안은 남자의 어깨에 얼굴을 대었다.
“…어리광도 많은 주제에.”
사랑이 아니라면 생각할 수 없을 감정이었다. 아무리 아닌 척을 해와도 닿을 수밖에 없는 마음이었다. 이어갈 수 있다면 언제까지고 이어가고 싶은 사사로운 기분에, 신의 이름마저 들먹였다. 그가 항상 무관심으로 있길, 그렇게 이 일상이 깨어지지 않길.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할 수 있길, 그러길 바라고 또 바랐다. 신이치는 작게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어색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그가 나눈 다정함에 감화되도록. 그렇게 그와의 시간을 아낄 생각이었다.
“네, 네.”
“네는 한 번만.”
“네에, 미야노 씨.”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을 나눌 생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