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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메 쉐리실.png

마지막 작전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온전히 내 손아귀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조직의 2인자 럼과 동등한, 아니 실질적으로는 럼보다 조금 더 위인 위치에 있는 그 『실버불렛 Silver Bullet』이니까. 내 입김과 내 계획에 의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내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없었다. 나는 내 운명조차도 내가 주무를 수 있어야 직성이 풀렸고, 실제로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 선 안에 있는 존재의 소망을 들어주지 못 할 이유도 없었다.

 

코드네임, 쉐리. 본명은 미야노 시호. 자극만을 찾아 헤맬 만큼 세상 모든 것이 따분하고 의미 없는 나도 그녀가 관련되어 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조직에서 길러져, 함께 조직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그 정점인 코드네임까지 온 소꿉친구이자 동료, 전우이니까. 그녀는 내가 유일하게 내 선 안에 넣은 사람이고,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었다. 내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그녀와 엮인 이후로 나는 그녀만이 내 운명이라고 정했고, 그녀의 운명도 오직 나라고 정해두었다.

내가 「정했다」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저 말이나 생각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조직 지휘부의 정점, 실버불렛. 어릴 때부터 조직의 수많은 작전과 행적은 나의 머리를 통해서 이루어졌고, 그러니만큼 그보다 작은 흐름의 일들은 더욱더 식은 죽 먹기이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조용히 듣기나 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니까.

 

 

오래 전의 일이다. 아마 여덟 살쯤이었던가. 조직은 아지트를 몇 번을 바꿔댔고, 그로인해 우리도 몇 번을 옮겨 다녔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다. 조직원들은 모두 여러 작은 무리로 흩어져서 이동하기로 했고, 우리는 만약을 위해 간부 몇을 데리고 다른 루트로 돌고 돌다가 목적지로 향했다. 그 돌아다닌 길에 지나친 어느 초등학교와 놀이터. 시끄러운 그 곳으로 시호는 몇 번이고 눈을 돌렸다. 나는 간부가 눈치 채기 전에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왜, 흥미라도 있어?"

"…그냥. 우리 또래인가 봐."

"몸집이야 그래 보이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그렇게 말하면서 또 시선이 돌아가려고 하는 그 미련 남은 얼굴이 잊히지가 않았다. 또래가 그냥 뛰어다니고 떠드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흥미를 불러일으켰을까. 나로선 잘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녀가 바란다면 이루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지.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작은 목표 하나가 내 안에서 싹을 틔웠다.

 

그 날 이후 머지않아 나는 코드네임을 받았고, 곧 보스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올랐다. 이례적인 최연소 초고속 승진이라고 술렁였지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놀라울 것도 없다. 그저 당연할 뿐. 내가 원해서 쟁취한 위치였으니까. 그 후 나는 조직의 참모로서 수많은 작전을 세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작은 작전의 씨앗을 심어 차차 크게 키워냈다. 언젠가 그 결실을 수확하고 뽑아버리면 그대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도록.

 

 

나는 조직의 작전 이외에도 행정이나 행적에 대해서도 많은 관여를 했고, 쉐리에 대해서도 많은 손을 썼다. 그러니까, 쉐리를 조직 내에서 고립되게 만드는 것이라던가― 말이다. 쉐리는 조직에서 키워진 인물답지 않게 모질지 못하고 여린 면이 있어서, 그 면은 조직의 시커먼 놈들 사이에서 유난히 나에게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는 그 모습을 지키기로 했고, 그녀가 다른 놈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격리시켰다. 제약부의 윗자리에 선 그녀에게 새로운 약의 개발을 시키고, 이런저런 구실로 다른 놈들의 접근을 막는 것. 그 정도면 충분했다. 뭐, 그녀가 개발하고 있는 약은 극비에 속하니 굳이 구실이라고 하지 않아도 다른 놈들은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까지 계산하고 계획한 일이니까.

 

그 와중에 쉐리는 내 생각만큼이나 영리하고 쓸모 있고, 또 내 운명답게 흥미로워서, 약 개발 중에 독특한 효능을 가진 약을 개발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굉장한 수확이었다. 독약이나, 아주 극히 낮은 확률로 세포의 시간을 되돌려 어려지게 만드는 약. 지금까지 견고하게 쌓아놓은 나의 계획을 마무리지어줄 수 있는 히든카드가 될 만했다. 나는 좀 더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거라면 훨씬 빨리 완성될 수 있겠어.

나는 그 약을 보고하지 않고 쉐리와 나만의 비밀로 붙였다. 물론, 더 개량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마찬가지로 당연하게 그녀는 해냈다. 그렇게 나온 약은 나의 오랜 작전에 중요한 키워드가 될, 그래, 「실버불렛」이라고 칭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약을 실버불렛이라고 이름 붙였다. 쉐리는 악취미라고 했지만, 그녀는 의미를 모르니 어쩔 수 없지.

 

 

자, 이제 지금까지 긴 서론을 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그건 오늘이 내가 지금까지 키워온 작전의 결실을 수확하는 날이기 때문이지. 불이 꺼진 방에는 수없이 켜진 모니터만이 시리게 빛을 내고 있었고, 나는 감흥 없이 그것들을 바라보며 몇 번 클릭과 타자를 반복했다. 수없이 많은 창이 켜졌다 사라졌고 그에 따라 모니터는 새파란 빛을 깜빡깜빡 점멸했다. 여덟 살의 그 날, 처음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던 커다란 작전의 절정과 결말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곧장 쉐리의 연구실로 가서 문을 크게 두드렸다. 손목시계를 흘끔 곁눈질했다. 내 방에서 나온 이후로 이십일 분 사십삼 초 십구가 지났다. 대답을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나는 바로 내 전용 카드로 출입인증을 찍고 문을 열었다. 어째서 매번 멋대로 들어오는 거냐고 버럭 소리치던 얼굴이 나를 보고 멈칫 수그러들었다.

 

"당신…, 왜 그런 표정이야? 생전 처음 보는…"

"쉐리, 미리 부탁한 대로, 실버불렛 두 알 준비해 뒀지? 지금 그 약이 필요해."

"뭐? 준비해 두라고 해서 해 두긴 했지만… 이유도 말하지 않았잖아. 무슨 생각이야?"

 

그녀는 당연하지만 늘 그렇듯이 흰색 연구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아직 싸늘해지지는 않았지만 저 얇은 가운으로는 건물 밖에 나가면 조금 추울지도 모른다. 나는 바로 내 겉옷을 벗어서 쉐리의 어깨에 덮었다. 십일 초 육십이.

 

"나중에 한꺼번에 설명하지. 지금은 모르는 편이 나아. 그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러면 늘 그랬듯이 잘 될 테니."

 

그녀는 지금 아는 것보다는 나중에 한꺼번에 듣는 편이 나을 터이다. 지금 들어보았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괜히 신경이 쓰일 뿐, 그녀는 그저 나를 믿고 내 계획을 믿으면 된다. 그 외에는 전부 쓸데없는 고민이고, 너에게 쓸데없는 것들을 줄 이유는 없지. 나는 약을 건네받아 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쉐리의 손을 잡아 밖으로 잡아끌었다. 칠 초 사십오, 아직은 예상 안.

 

"잠깐!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아까부터 당신답지가 않잖아! 뭐가 그렇게 초조한 거야? 설명을 해 줘, 실버불렛!"

 

아 이런, 나답지 않게 조금 초조했나? 아니, 이건 초조한 것이 아니라 희열에 가깝지 않을까 했는데. 그녀가 관련되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나답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도 전혀 티를 안 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걸 읽은 것이 그녀라고 하니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를 당겨 걸음을 재촉했다. 오 초 삼십일. 늦지는 않지만 만약을 위해 서두르는 편이 좋다. 저 쪽과는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나의 팔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그녀가 끌려가지 않도록 강하게 발을 디뎠다.

 

"무슨 일이냐고 했잖아. …설명해 줘, 쿠도 군."

 

그녀의 눈이 약간의 불안으로 울렁이고 있었다. 옛날의 그 호칭을 굳이 쓴 것을 보면 어지간히 듣고 싶었나보지. 나는 시계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다행히 연구소 건물 입구 근처까지는 나왔다. 쉐리가 이럴 것 같아 어느 정도 여유 시간을 만들어두긴 했지만… 정말 예상대로네, 너는. 내 유일함, 내 운명. 넌 늘 한결같고 내 생각대로라 흡족할 정도야.

 

"내가 말했지. 이 약은 내 오랜 작전의 결정적인 키워드, 돌파구가 될 「실버불렛」.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탄탄하게 쌓아온 계획을 바로 네가 약으로 완성시킨 거야."

 

내 손 안에서 쉐리의 손이 약간 움찔 흔들렸다. 그래, 실버불렛이라는 이름을 괜히 붙인 것이 아니지. 내가 하는 일들은 언제나 이유가 있고 계산이 되어있다는 것을 이제야 다시 깨달은 거야? 귀엽기도 하지. 나는 잡고 있던 쉐리의 손을 펼치고 그 위에 받았던 약을 한 알 돌려놓았다. 빨갛고 하얀 조그만 약 하나가 그녀의 작은 손 위에 덩그러니 놓였다.

 

"내 작전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 지금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야. 이대로 북쪽 연구관으로 가. 머지않아 별 하찮은 것들이 널 잡으러 올 거야. 반항하지 말고 잡혀 있다가 감시가 빠지면 약을 먹어."

"이 약을, 먹으라고? 당신도 이 약의 효과를 알잖아!"

"쉐리, 너를 믿고 나를 믿는다면, 먹어."

"잠깐, 그래서, 최대한 부작용이 없도록 만들라고…."

 

그녀는 놀란 듯 숨을 들이켰다. 내 계산이나 생각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놀라는 얼굴들을 나는 즐기긴 하지만, 그녀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너무 만족스러워서 손아귀에 꽉 잡아 쥐고 싶다.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떤 말이 옳을까.

 

"당신은… 이걸 전부 다 계획하면서, 내가 만든 약을 쓰면서도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안 했다는 거야?"

"흠, 그걸 섭섭해 할 줄은 몰랐는데. 그건 사과하지. 하지만 네가 알 필요는 없었어."

"어째서?"

"네가 알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말해두어 보았자 네가 쓸데없이 걱정을 할 뿐. 그렇다면 말 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쉐리의 옆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잡아 그녀의 귀 뒤로 넘겼다. 가려져 있던 뽀얗게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그 볼을 한 번 슬쩍 쓸었다. 부드럽다.

 

"오늘, 이 조직은 무너진다. 아까 노크를 하나 건드려놨어. 예상대로 노크들이 죄다 몰려가서 일을 키워놓고 있지. 이미 조직의 정보도 여기저기로 빼돌려 보내놨고, 이제 돌이킬 수 없어. 계획은 이미 다 진행되었고 남은 건 오직 결말. 내가 원했던 결말을 수확하고 빠져나가면 되는 거야."

"조직이 무너진다고? 당신, 뭘 한 거야? 그리고 빠져나간다니?"

"여기서 온전히 빠져나가는 건 너와 나, 둘 뿐이야. 나는 네가, 너는 내가 전부가 되는 거지. 방해하는 놈은 아무도 없이."

 

그래, 이 조직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그녀와 나, 오직 단 둘 뿐이다. 그 외는 전부 잡히거나 죽을 뿐. 섣불리 도망칠 구석을 남겨두지도 않았고, 잡힌 이후에도 탈출할 방법은 남겨두지 않았다. 내 목적을 위해 전부 죽어줘야겠어. 우리의 미래에 너희들은 이제 걸림돌일 뿐이니까.

 

"자, 이제 슬슬 시간이 없어. 가!"

 

말하느라 꽤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떠밀리며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청록색 바다가 눈동자 안에서 울렁이고 있었다.

 

"곧 다른 모습으로 다시 만나지, 미야노. 이건 전부, 너와 나를 위한 계획이니까."

 

덧붙인 말에 그녀의 눈빛이 천천히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어라, 눈치 챌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무언가 깨달은 걸까. 놀랍기도 하지. 언제나 내 운명은 내 흥미를 끄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운명을 느끼고 늘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겠지.

 

"당신… 내가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런, 이런…"

 

그녀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 표정에서 이미 답을 읽은 모양이었다. 그래, 내가 지금까지 너를 보았듯이 너도 지금까지 나를 보았겠지. 상대에게 익숙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니, 어리석은 질문이었어. 당신이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었던 적이 있던가.

…실버불렛, 하, 이 호칭도 이제 마지막이겠네. 혹시라도 엇갈리면, 이번에는 조금 덜 급하게 찾으러 와 줘. 기다릴게, 쿠도 군."

 

연구실로 향하는 등을 나는 그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엇갈린다, 라. 알고 있었나. 같이 돌아온 이후, 상부의 무슨 판단이었는지 나는 그녀와 격리되었고, 그녀를 내 옆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직 힘이 없었던 나는 시키는 일을 모두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시키지도 않은 온갖 일을 도맡았고, 전부 단순한 달성을 넘어선 결과를 내었다. 그렇기에 내가 바로 코드네임을 얻고 보스 바로 아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나로부터 떼어놓은 놈들은 다 처리했으니 그녀는 몰랐으리라 생각했는데.

하하, 나는 살짝 마른 웃음을 뱉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코드네임을 얻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도 코드네임을 얻었지. 너도 나에게 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까. 다시 함께 있게 되기까지 너도 또한 그 날만을 바라보며 계속 달려왔던 걸까.

…그렇다면 이번만큼은, 그 날처럼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겠어. 나는 등을 돌렸다. 손 안에는 남은 약 한 알이 구르고 있었다.

 

 

자, 이제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거야. 너도, 나도 작은 아이가 되어 오직 서로만을 전부로 손을 맞잡고 같이 자라나게 되겠지. 지금까지 그랬듯이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자라는 그 곳은 그녀가 원하던 대로 이런 어둠이 아니라 밝은 빛 아래가 될 것이다. 내 계획은 완벽해. 틀리지 않았어.

 

아직도 나는 그 날의 그녀가 동경했던 것이 그 빛의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녀가 이 조직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이유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뭐 어떤가. 나는 실버불렛. 나는 내 운명조차도 내가 주무를 수 있는 사람이었고, 유일하게 내 선 안에 있는 존재의 오랜 소망을 들어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게 빛나는 너는 저 밖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빛날까. 상상해 볼 때마다 기대와 흥미로 온 몸이 전율이 인다.

나는 약을 목 너머로 털어 넘겼다. 곧 만나러 갈 테니까, 이번에는 네가 알려줘. 그날 여덟 살의 내가 너의 손을 잡고 이끌었듯이, 이번에는 여덟 살의 네가 내 손을 잡고 이끌어 봐. 네가 바라마지않던, 그 빛의 한가운데로.

 

 

 

Special Thanks to. 뀻@poirot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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