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기일식
당신을 덮는 나의 그림자
이젠 아무도 남지 않은 연구소 안으로 차가운 달빛이 스며들어온다. 잔에 담겨 있던 얼음이 달빛에 녹아 서로를 밀어내리는 소리만이 텅 빈 연구소 안을 채운다. 샤워 가운을 걸친 시호는 몽롱하게 풀린 동공으로 서로를 밀어내는 얼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은 서로의 체온을 그리워해 결국 하나로 합쳐 질 운명이었다.
마티니 안에 가라앉아 있던 올리브를 입 속으로 굴려 넣었다. 입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올리브는 살짝 힘을 주어 깨물자 금방 제 형체를 잃고 터져버렸다. 올리브 속에 감춰져 있던 마티니가 입을 적시기도 잠시, 날아가 사라지며 아찔한 향만이 입 속에 남았다.
“…하.”
길게 내뱉는 숨에 술기운이 젖어있다. 무색무취의 알코올이지만 드라이진과 베르무트를 섞은 마티니는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 사실을 망각한 것은 아니었다. 잊으려 노력한 것은 그가 늘 말해왔던 ‘진실’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누구도 돌아보려 노력하지 않는 진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지.
시호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을 것만 같은 작은 목함을 내려다본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크고 높은 존재였던 그가, 이젠 자신의 작은 품에 안기고도 남을 정도로 작은 목함 속에 잠들어있다. 작은 목함에는 그 누구의 이름도 적혀있지 않았다. 습기가 금방 차올라 변형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였다. 조직원의 죽음조차 세간에 알리고 싶지 않은 그들의 뜻이기도 했다. 누군가 말하길, 사람은 하나를 잃으면 또 다른 하나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얻는다고 했는데, 시호는 달랐다. 하나의 하늘에 두 개의 달이 뜰 수는 없는 법이었다.
― 개기일식, 이라는 거 말이야. 꽤 로맨틱하지 않아?
― …뭐? 로맨틱?
―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이 그림자만으로도 서로를 안고 싶다는 거잖아?
결국 손에 쥘 선택지는 단 하나 뿐이었다. 코난의 안경과 함께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흰 약통을 꺼내들었다. APTX 4869,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약이 나와 당신을 이어준 수단이라는 사실이 꽤 로맨틱 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잠시 생각했다. 우스운 일이지, 세상이 이젠 코난이 아닌 마티니로 당신을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야.
― 확실히 비슷하긴 비슷하네.
― …뭐?
― 우린 여전히 서로의 그림자를 덮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야.
시호는 약통 안에 남았던 단 하나의 알약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유리잔 안의 얼음은 모두 녹아 물이 되었고, 물에 잠긴 달은 그 끝을 모른 채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심박동이 빠르게 울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거칠어지며 환상과 환각 사이의 감각이 몸을 헤집었다. 빛과 그림자, 그 사이엔 여전히 당신이 있었다.
당신을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 쿠도 신이치.
두 개의 그림자가 합쳐지는 오묘한 밤, 쉐리는 마티니 속으로 잠겨 들었다.

